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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과 2026 사이

1956년 AI라는 단어를 함께 만든 마빈 민스키와 존 맥카시는, 30년 뒤인 1986년에는 서로 다른 AI의 정의를 향해 갈라져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40년 뒤, 그 두 갈래는 마빈 민스키와 존 맥카시가 아닌 OpenAI와 Anthropic이라는 IPO를 준비중인 두 기업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두 축을 담당하고 있다.

1986과 2026 사이

1956년 AI라는 단어를 함께 만든 마빈 민스키와 존 맥카시는, 30년 뒤인 1986년에는 서로 다른 AI의 정의를 향해 갈라져 있었다. 40년 뒤, 그 두 갈래가 OpenAI와 Anthropic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1986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40년 뒤인 2026년 2월, METAL AI라는 회사를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기업들의 AX 전환을 도와주는 기업이다. 더 깊게는 직접 기업에 침투해 기업의 모든 부서를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비스포크된 SaaS 를 개발해서 로컬 LLM 위에 올려 안전한 내부망에서 AI를 온톨로지 위에 올려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사이다.

회사를 시작한 지 석 달째 되던 5월 어느 밤, 다양한 책들을 읽던 중 예전에 사둔 한 권의 책 표지를 들여다보다가, 나의 METAL AI의 시작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은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의 『Society of Mind』였다. 1986년에 출간된 책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의 거대한 통일된 지성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에이전트들이 서로 부딪치고 협력하면서 만들어내는 하나의 사회라는 가설을 담고 있다.

같은 해, 한때 그와 같은 연구실을 만들었던 친구 존 맥카시(John McCarthy)는 스탠퍼드에 있었다. LISP — 60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AI 연구실이 쓰는, 가장 오래 살아남은 프로그래밍 언어 — 를 다듬으면서, 세계를 정확히 기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형식 언어를 향한 집착을 한 번도 놓지 않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1956년 다트머스 워크숍에서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단어를 함께 만든 사이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1986년, 두 사람의 길은 더 이상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았다. 한 사람은 모델안의 사회로 갔고, 다른 한 사람은 논리의 신전으로 갔다.



1. 친구였다가 갈라진 두 사람

두 사람의 갈라짐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1959년, 두 사람은 MIT에 AI 연구실을 함께 만들었다. 둘 다 30대 초반이었고, 1956년 다트머스에서 막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새 단어를 세상에 풀어놓은 직후였다. 그 시기 두 사람은 같은 그림을 본다고 믿었다.

그러다 1962년, 맥카시가 스탠퍼드로 떠난다. 그곳에서 자기만의 AI 연구실을 새로 차렸다. 거리는 5천 킬로미터가 됐고, 사상은 그 거리보다 더 멀어졌다.

맥카시는 세계를 형식 논리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형식 논리란 어렵게 말하면 "참인 명제와 명제 사이의 관계를 기호로 정확히 적는 일"이고, 쉽게 말하면 세계를 수학처럼 풀어쓰는 일이다. 그는 충분히 정교한 기호와 충분히 깔끔한 규칙만 있으면, 기계는 결국 인간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만든 LISP는 단순한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다. 세계를 함수의 조합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한 사람의 종교였다.

민스키는 다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사실 — 마음은 깔끔하지 않다 — 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컵을 드는 단순한 동작을 떠올려보자. 그 한 동작에도, 무게를 가늠하는 작은 생각, 손가락을 펴는 운동 생각, 컵의 미끄러움을 예측하는 생각,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두려움의 생각이 동시에 병렬로 작동한다. 어느 하나도 컵을 드는 일을 단독으로 책임지지 않는다. 컵은 작은 에이전트들의 합의로 들리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민스키는 1986년 책 한 권을 통째로 바쳤다. 『Society of Mind』, 직역하면 마음의 사회. 그는 마음을 단일한 추론 엔진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전문가들의 시끄러운 회의실로 그렸다. 어떤 에이전트는 이성적이고, 어떤 에이전트는 감정적이며, 어떤 에이전트는 그저 패턴을 외우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부딪치고 타협하면서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발생한다.

맥카시는 마음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민스키는 마음을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그 갈라짐은 40년이 지나 OpenAI와 Anthropic이라는 두 회사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난다.


2. 같은 질문, 다른 화면 — 어느 밤 두 모델을 켜본 일

며칠 전 새벽, 책상 앞에 앉아 두 개의 창을 띄웠다. 왼쪽에는 ChatGPT(GPT-5.5), 오른쪽에는 Claude. 같은 시각, 같은 질문을 두 화면에 동시에 던졌다.

"한국 중소기업 대표가 AI를 처음 도입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GPT는 망설임 없이 첫 줄에 답을 던졌다.

"'AI를 어디에 쓸지'가 아니라, 회사 안에서 반복적으로 낭비되는 흐름 하나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반복 업무 후보 리스트, 단계별 처방, 되는 것과 안 되는 결론 박스가 단정하게 쏟아졌다. 단단하고 빠르고 자신 있는 답이었다. 한 명의 똑똑한 컨설턴트가 정답지를 그 자리에서 작성해 책상 위에 내려놓는 결.

같은 질문에 Claude는 다르게 시작했다.

"이 질문에 한 줄로 답하기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직원 5명짜리 컨설팅 회사, 직원 80명짜리 제조 공장, 매출 200억대 SaaS 스타트업이 다 한국 중소기업이고, 이 셋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한 가지는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망설임으로 시작한 다음, Claude는 한 줄짜리 정답을 던지지 않고 질문을 한 번 더 잘게 쪼갰다. 대표 자신이 가장 불안한지, 팀장급이 가장 불안한지, 현장 실무자가 가장 불안한지에 따라 첫 단계가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답이 끝난 자리에 한 줄을 더 붙였다. "다만 이 답은 평균적인 한국 중소기업을 추정하면서 드린 답이고, 회사 규모와 산업을 알려주시면 더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

두 답은 모두 똑똑했다. 틀린 줄을 한 줄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결이 너무 달랐다.

GPT는 한 명의 천재가 책상 위에 정답지를 내려놓는 결이었다. Claude는 질문이 도착하자 머릿속 작은 회의실이 잠깐 떠들썩해진 뒤 합의된 답을 내미는 결이었다.

이건 모델 크기 차이도, 학습 데이터 차이도 아니다. 마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두 회사의 다른 답이 그대로 화면 위에 흘러나온 것이다.

OpenAI가 만들고 싶은 건 한 명의 거대한 천재다. 더 큰 모델, 더 많은 데이터, 더 긴 컨텍스트, 더 깊은 추론. 이 모든 화살표가 한 점으로 모인다. 충분히 똑똑한 단일 추론자가 결국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약속 — 60년 전 맥카시가 했던 그 약속의 정확한 연장선이다.

Anthropic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흥미로운 건, Anthropic을 만든 사람들 중 다수가 원래 OpenAI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한 회사 안에서 자라다, 어느 시점에 마음을 한 명의 천재로 정의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갈라져 나왔다. 60년 전 맥카시가 민스키와 한 연구실에서 시작했다가 끝내 갈라져 나간 것과 정확히 같은 모양이다.

Claude의 출력 안에는 여러 층의 작은 망설임과 보정이 있다. 한 번에 답을 내지르지 않고 다른 관점을 띄우고 자기 출력을 스스로 점검한다. 그들의 Constitutional AI — 모델에게 헌법을 주고, 그 헌법을 따라 자기 답을 자기가 검열하게 시키는 방식 — 는 모델 위에 군림하는 단일 명령서가 아니라, 여러 원칙들이 서로 견제하는 작은 사회다. 그들이 미는 멀티 에이전트 구조, 즉 한 명의 천재 대신 여러 작은 전문가에게 일을 나눠 맡기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1986년 민스키가 그렸던 마음의 사회를 트랜스포머 위에 다시 그린 것이다.

GPT를 켤 때와 Claude를 켤 때 우리가 미묘하게 다르게 느끼는 그 결은, 모델 크기가 아니라 1986년 두 친구가 마음에 매겨놓은 서로 다른 정의가 40년 뒤 두 회사의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차이다.



3. 1986년이 이미 답을 보내놓은 논쟁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놀랐던 건, 우리가 2026년 매주 X나 쓰레드에서 싸우고 있는 AI 논쟁의 절반이 사실 1986년에 이미 결판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Alignment라는 단어가 어디서나 들린다. AI를 사람의 의도와 어긋나지 않게 정렬한다는 뜻이다. 그 방법으로 흔히 따라오는 말이 있다. 모델이 자기 출력을 스스로 검토해야 한다, 다른 모델이 그 모델을 감시해야 한다. 그런데 민스키는 1986년에 이걸 사람의 마음 안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로 이미 그려두었다. 마음의 한 부분은 다른 부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들여다본다고. 우리는 그걸 평소에 양심이라고 부르며 살고 있다고. 행동하는 사람과 그 행동을 보는 사람이 사회에 동시에 필요하듯이, 마음에도 자기를 보는 자기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이, 40년이 지나 Alignment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 책상 위에 다시 놓였다.

요즘 한참 뜨거운 멀티 에이전트도 마찬가지다. X에 매주 "이제는 단일 모델이 아니라 여러 에이전트가 협업하는 시대"라는 말이 올라온다. 민스키는 그것을 인간 마음의 기본 구조라고 이미 1986년에 설명해 두었다. 우리가 "내가 결정한다"고 느끼는 그 단단한 자아조차 사실은 작은 부분들이 협의해 만들어낸 결과물, 일종의 환각이라고. 단일성은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이라는 그의 통찰을, 우리는 지금 트랜스포머 위에 작은 에이전트들을 얹으며 다시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Chain-of-Thought — 모델이 답을 한 번에 내지 않고 혼잣말로 단계를 밟으며 풀어가는 방식 — 도 갑자기 등장한 발상이 아니었다. 맥카시는 평생 "추론은 형식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한 번에 답으로 점프하지 말고 단계마다 검증 가능한 자취를 남기라는 그의 고집은, 결국 수학 시험에서 풀이과정을 모두 적으라는 선생님의 잔소리와 정확히 같은 약속이다. 우리가 chain-of-thought라고 부르는 그 줄줄이 이어지는 단계들은 사실 60년 전 맥카시가 종이 위에 쓰고 싶어했던 바로 그 모양이다.

외부 메모리와 외부 도구는 두 사람이 다른 결로 같은 미래를 본 영역이다. 맥카시는 외부의 형식 시스템에 기억과 계산을 위임하는 그림을 그렸다. 민스키는 작은 기억의 신호선들이 마음 안과 바깥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고 보았다. 지금 우리가 RAG라는 이름으로 모델에게 검색을 붙여주고, MCP라는 이름으로 모델에게 도구 사용 능력을 쥐여주고 있는 그 모든 작업은 — 쉽게 말하면 문제집 옆에 사전과 계산기를 두는 일 — 두 사람의 그림 안에 이미 들어 있던 일이다.

이걸 정리하면서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두 사람은 분명 40년 앞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때 본 풍경이, 지금 GPU와 LLM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새로 발명한다고 믿었던 것들의 절반은 사실, 1986년의 두 친구가 던져두었던 질문에 대한 우리의 — 좀 늦은 — 대답이었다.


4. 그래서 나는 어디에 발을 디딜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두 길 사이에 서 있다고 생각해 왔다.

도구로서 LLM을 다룰 때 나는 맥카시 쪽에 가깝다. 빠르게, 정확하게, 한 번에 답을 내는 단일 모델이 좋다. 일을 시킬 때는 단일 추론자가 편하다. 결과물을 받고 바로 다음 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러나 회사를 운영하고 클라이언트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설계할 때 나는 민스키 쪽으로 기운다. 회사를 시작한 지 3개월, 그 안에 내린 모든 결정이 결국 한 방향으로 누적됐다.

첫 번째는 제품이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경량 팔란티어 SaaS는, 처음부터 한 가지 전제를 깔고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전사 통합은 단 한 번의 단일 호출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회사의 의사결정은 마케팅·기획·MD·재무·운영이 각자의 작은 맥락 안에서 따로 자라온 결정들이 서로 부딪치고 합의한 결과다. 이걸 한 모델 한 번의 호출로 풀어내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틀린다. 우리 제품의 기본 단위는 작은 맥락 하나하나이고, 그 위에 작은 에이전트들의 연결고리를 얹어 결론을 도출하는 구조다.

두 번째는 클라이언트였다. 어느 클라이언트가 처음 우리에게 의뢰한 건 마케팅 부서의 AX 변환 한 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의뢰를 그대로 받지 않았다. 마케팅 한 부서만 손대면 그 위의 시즌 기획이 같은 속도로 따라오지 못하고, 그 위의 트렌드 리서치, 그 위의 MD 상품 기획이 줄줄이 어긋난다. 마케팅 한 부서를 빠르게 고치는 일은 그 회사 전체를 더 빠르게 어그러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사 차원의 AX를 역제안했고, 클라이언트는 받아들였다. 부분 최적화가 아니라, 작은 부분들의 합의 구조 자체를 다시 짜는 일.

세 번째는 조직이었다. METAL AI는 4명 미만의 경량 조직이다. 그런데 우리는 AI 조직이라고 해서 개발자만 채우지 않았다. 큰 축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고, FDE(Forward Deployed Engineer)로서 클라이언트와의 인터뷰를 끝까지 끌어내는 휴먼 리서처 한 사람이 우리 안에 있다. 목지혜다. 4명짜리 조직이라도 그 안에 서로 다른 결의 머리가 부딪치는 구조가 들어 있어야, 회사가 한 사람의 한 가지 시각으로 닫히지 않는다.

물론 정직하게 짚고 가야 할 한 가지가 있다.

OpenAI도 최근에는 멀티 에이전트 구조를 만들고, Anthropic도 결국 한 대의 거대한 트랜스포머 위에서 모델을 돌린다. 두 회사의 길은 산 정상에서 같은 AGI라는 이름으로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자세는 다르다. 정상의 좌표가 같다고 해서, 매일 한 걸음을 떼는 사람의 시선까지 같지는 않다. 우리는 매일 한 걸음을 떼는 사람들이고, 그 한 걸음의 자세가 회사의 모양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본질을 본다. 겉을 두른 시끄러운 마케팅과 짧은 정답들이 아니라, 정말 우리를 필요로 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전달될 합의된 양심을. 한 명의 천재가 책상 위에 정답지를 내려놓는 회사가 아니라, 작은 맥락들이 부딪치고 합의해 결론을 만들어내는 회사를.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적어둔다. METAL AI라는 회사의 키 메시지는 우리가 발명한 한 줄이 아니다. 그것은 1986년 한 사람의 책상 위에 이미 적혀 있던 한 줄이다.

"지능의 힘은 단 하나의 완벽한 원리가 아니라, 우리의 광대한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 마빈 민스키, 『Society of Mind』(1986)



마빈 민스키는 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존 맥카시는 2011년에 떠났다. 두 사람 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 어떤 나무로 자라고 있는지 끝까지 보지 못한 채로 갔다.

그러나 그들이 1986년에 이미 그려놓은 두 갈래의 길 위에서, 2026년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질문을 풀고 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본질이란 무엇인가.

이 글을 마치고, 책상 위에 놓인 『Society of Mind』의 첫 페이지를 다시 연다.